서론: 치유의 힘을 함께 되돌아보는 시간
한때 푸르게 반짝이던 창가의 화분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주 물을 주고,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놓아두며 애정을 쏟았습니다. 싱그러움을 품고 있던 그 식물은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으로 작은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돌봄의 손길이 끊기게 되었고, 바쁜 일상에 밀려 점점 관심에서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말라가는 잎, 부서지는 가지, 푸석한 흙. 언젠가부터는 그 화분이 있는지도 잊은 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창가를 바라보다 그 마른 화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그 화분 앞에 잠시 멈춰 섰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게 울렸습니다. 마치 방치된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았습니다. 이 글은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이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통해, 삶의 무게에 짓눌린 우리의 감정과 태도, 그리고 돌봄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치유의 힘을 함께 되돌아보는 시간을 담고자 합니다. 식물을 살리는 일은 단순한 행위를 넘어 스스로를 되살리는 경험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변화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본론: 생명을 불어넣다.
1. 바빠지는 시간, 조용히 말라버린 잎들
화분을 처음 들였을 때는 작은 생명 하나를 소중히 다루려는 마음이 컸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물을 주고, 잎을 닦고, 햇볕이 잘 드는 방향으로 위치를 조정해 주며 많은 애정을 쏟았습니다. 싱그러운 잎이 피어날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고, 식물이 자라나는 모습은 하루의 시작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삶의 리듬이 바빠지고 여유가 사라지면서 점차 그 화분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일들에 밀려 작은 생명을 향한 관심은 뒤로 밀렸고, 화분은 점차 그늘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물 한 모금받지 못한 채 말라버린 잎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흙은 갈라졌으며, 줄기는 부러질 듯 마른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미 죽은 것이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 있으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고,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화분이 아니라 나 자신을 그렇게 단정 지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2. 시작하는 신호
삶이 지치고, 무기력함이 깊어지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피곤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다가, 구석에 놓인 그 화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난히 공허하게 느껴지는 그날, 무언가 작은 위로가 필요했던 저는 조심스럽게 화분을 들어 창가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물을 부었습니다. 마른 흙이 물을 천천히 머금는 모습은 묘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지만, 그저 ‘돌본다’는 행위만으로도 나 자신에게 안정을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며칠 간격으로 물을 주기 시작했고, 햇빛이 드는 자리에 두며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습니다. 말라버린 가지는 여전히 푸석했고, 흙은 여전히 생기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가지 끝자락에서 아주 작은 초록빛의 싹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식물의 새싹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다시 꿈틀대기 시작하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3. 긍정의 암시
식물은 단기간에 회복되지 않습니다. 뿌리가 마른 흙을 다시 받아들이고, 수분과 양분을 저장하며 생명력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말라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내부에서는 생명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그와 같았습니다. 바깥으로는 여전히 지쳐 있었고 무기력했지만, 매일 물을 주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내 일상은 천천히 질서를 회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화분을 살펴보고, 햇빛 방향을 고려해 자리를 옮기며, 작은 잎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습관은 단순한 식물 돌봄을 넘어, 스스로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습니다. "너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그리고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는 긍정의 암시였습니다.
4. 삶을 향한 발걸음
화분을 돌보는 시간은 점점 내 하루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주말에는 잎을 하나하나 닦아주고, 영양제를 소량 섞어 주는 등의 관리까지 해주며 자연스럽게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정성들이 모여 하나의 루틴이 되었고, 마음에도 따뜻한 리듬이 생겨났습니다. 하루에 단 5분이라도 무언가를 돌보는 시간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외로움과 허무함이 자리했던 자리에 작은 애정이 채워졌고, 식물의 변화에 따라 나 역시 조금씩 밝아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화분은 마치 나를 대신해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한때 포기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의 내면도 다시금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 화분에 생명력을 불어넣다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과정은 마치 조용한 기적과 같았습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고,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생명이 스스로 살아내는 모습을 보이며, 말 없는 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것은 식물이 아니라, 관심을 잃어버린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매일 물을 주고 햇빛을 쬐게 하는 반복 속에서 내 삶에도 규칙과 따뜻함이 생겼습니다. 식물의 성장은 곧 나 자신의 변화와 닮아 있었습니다. 작은 돌봄은 결국 나를 위한 돌봄이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이 다시 살아난 모습은 조용한 기적이었습니다. 식물을 살리는 일은 삶을 다시 일으키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초록을 마주하는 시간은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식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묵묵히 생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생명을 돌보는 그 조그마한 행동들이 결국 나를 돌보는 행위였으며, 식물이 살아나는 모습 속에서 나도 함께 회복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식물을 돌보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단지 매일 눈을 마주치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쬐게 해주는 일상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반복 속에 담긴 정성과 애정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삶의 온기를 되찾게 해주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지금도 창가에는 그 화분이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 무성해진 잎들과, 다시 살아난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공간에서 저는 하루를 시작합니다. 회생에 성공한 화분은 예전보다 더 단단하고 강한 생명력을 품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그렇습니다. 꼭 다시 피울 수 있습니다.